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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시 노인대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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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첨단 무기와 과학 기술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기의 우열을 뛰어넘는 위대한 지혜를 보기도합니다. 바로 130여 년 전, 절망적인 열세 속에서도 백성들의 지혜와 연대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해 낸 동학농민혁명의 '장성 황룡촌(현 장성군 황룡면)전투'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1894년 5월, 황토현 전투의 승리로 기세를 올린 동학농민군은 전남 장성 황룡촌에서 최악의 상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선 조정이 파견한 최정예 중앙군(경군)으로, 관군은 당대 최고의 신식 무기였던 개틀링 기관포(회선포)와 크루프 평사포, 스나이더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재래식 화승총과 대창을 든 농민군의 무기는 터무니없이 초라했습니다. 객관적 화력의 차이만 보면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투의 판도를 뒤바꾼 것은 다름 아닌 시골 마당의 ‘닭장’이었습니다. 농민군은 대나무를 항아리 모양으로 길게 엮어 닭을 키우던 일상 용품인 '장태'에 주목했습니다. 대나무 틀 내부에 짚과 솜을 빽빽하게 채워 넣고 바퀴를 달아 굴릴 수 있게 만든 이 장태는, 관군의 총탄과 파편을 흡수하는 훌륭한 방탄 무기로 거듭났습니다. 겉면에는 칼과 창을 고슴도치처럼 꽂아 공격력까지 더했습니다.
"밑에 바퀴를 달아 굴려 오는데, 총알과 돌을 쏘았으나 대나무 통이 모두 막아주었다." 야사인 '오하기문 (梧下記聞)'의 기록처럼, 수백 개의 장태를 굴리며 언덕 아래로 돌진하는 농민군의 기세에 신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은 극도의 공포에 빠져 전열을 상실했습니다. 이 승리로 농민군은 관군의 최신식 무기까지 전리품으로 획득했고, 마침내 호남제일문인 전주성에 입성하는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황룡촌 전투의 '장태 전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수치상의 거대한 격차와 압도적인 환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변의 익숙한 도구(닭장)를 창의적으로 응용하여 최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민중의 지혜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과학기술과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130여 년 전 황룡촌의 대나무 닭장이 가르쳐준 창의적 지혜와 위기 극복의 DNA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여전히 유효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 김남영 / 동두천시 노인대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