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청령포 한가운데 수령 600여 년을 헤아리는 관음송(觀音松)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단종의 비극이 영월이라는 멀리 떨어진 땅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고장 포천과 깊고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단종을 향한 충절과 그 이면에 숨겨진 처절한 비극의 중심에는 혜빈 양씨(惠嬪 楊氏)와 포천의 인물들이 있다. 혜빈 양씨는 세종대왕의 후궁이자, 어린 단종을 품에 안아 키운 유모이자 할머니 같은 존재였다. 세조가 계유정난과 단종 폐위를 거쳐 권력을 잡았을 때, 혜빈 양씨는 단종을 끝까지 보호하려다 참혹한 유배길에 올랐고 끝내 처절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서글픈 역사는 포천의 충절 유적과 직결된다. 포천 소흘읍 무봉리에 위치한 충목단(忠穆壇)에 배향된 충목공 유응부(兪應孚) 장군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장렬히 순절한 사육신 중 한 분이다. 또한 혜빈 양씨의 아들인 한남군(漢南君) 이어(李於) 역시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금산으로 유배되어 숨졌으며, 혜빈 양씨의 친족이자 종숙부인 양치(楊治) 병사공 등 수많은 충신·열사가 세조의 칼날 아래 단종과 뜻을 함께하다 포천 땅에 그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다하지 못한 역사적 과제가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혜빈 양씨의 유해는 양치 병사공이 포천 신북면 기지리 일대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지나, 애석하게도 현재까지 그 정확한 묘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 임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서글프게 잊힌 혜빈 양씨의 묘역을 찾아내어 발굴하고, 단종이 모셔진 영월 장릉 인접으로 봉안해 모시는 일이야말로 우리 포천문화원과 지역 사회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역사적 소명이다.
이번 영월 답사는 단순한 견학을 넘어, 우리 고장 포천에 서린 충절의 깊이를 되새기고 잊힌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다짐의 계기가 되었다. 포천문화원은 앞으로도 포천의 역사적 인물과 문화유산을 재조명하고, 혜빈 양씨 묘역 찾기를 비롯한 향토사 연구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 박찬억 / 포천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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