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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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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旣得權)이란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권력(權力)이란 말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기득권에서 得은 의미요소로 ‘쉬엄쉬엄 가다’의 뜻인 彳(척)과 발음요소인 㝵(막을 애)가 더해진 글자로 길을 가다가 재물을 줍는 다는 데서 ‘얻다’의 뜻을 나타낸다. ‘탐하다’, ‘만족하다’의 뜻은 파생되었다. 소전(小篆)을 보면 㝵는 재물을 뜻하는 ‘조개’의 상형인 貝(패)와 ‘손’의 상형인 寸(마디 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가다가 얻은 바가 있다[行有所得也]’라 하였다. 득남(得男)은 ‘아들을 낳다’의 뜻이며 득도(得道)는 ‘오묘한 이치나 도를 깨닫다’의 뜻이고 특세(得勢)는 ‘세력을 얻다’의 뜻이다.
‘저울질 한 뒤에야 가볍고 무거움을 안다[權然後知輕重]’는 말이 의미하듯이 權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다. 권에는 ‘권세’ 외에도 ‘저울 또는 저울질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미 경중(輕重)의 값은 정해져 있지만 저울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중의 값은 수시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권력이란 어떤 조직의 처한 상황을 잘 저울질하여 ‘대처하는 힘’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을 쥔 사람들은 한결같이 천년만년 누릴 것으로 착각 한다. 그래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 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 권력을 쥔 사람들은 올바르게 저울질해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기결(旣決) 미결(未決)이라고 쓴 결재판을 보았을 것이다. 기결이란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이고 미결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하는 기득권이란 이미 권력(權力)을 쥐었다는 말이다. 권세(權勢)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설했듯이 권력은 ‘권세의 힘’으로 남을 눌러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기득권과 권력은 표현만 다를 뿐 서로 통하는 말이다. 기득권을 타파(打破)해야 한다는 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권력을 내려놓아 한다는 말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남의 일로 치부(置簿)하고 만다.
왜 기득권을 타파해야 하는가? 정체되고 고착(固着)되기 때문이다. 안일과 나태(懶怠)에 빠지기 때문이다. 결국 퇴보하고 쇠락(衰落)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남의 일같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안사위(居安思威). 편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대비하라는 말이다. 권력에 집착하지 말고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이다. 일적십거무궤화삼(一積十鉅無匱化三).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누가 거스를 수 있는가? 누가 타파의 대상인가? 권력에 안주하는 위정자(爲政者)들이다. 권좌(權座)에 군림하면서도 약자인체 하는 위선자들이다. 권부(權富)를 탐하고도 빈자(貧者)인양 위장하는 모리배들이다.
진정 약자는 누구인가? 권좌에 앉는 순간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 권세를 누리는 순간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를 탐하는 순간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 권력을 잡은 측은 기득권 제거를 주장하지만 결국 그들 역시 엘리트라 자칭하는 순간 스스로 기득권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명심(銘心)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기득권과 특권 지키기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기득권을 가진 그들이 권력을 쥔 자신들을 어떻게든 흔들 것이라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해서는 안 된다.
어찌 해야 하는가? 혹세무민해서는 안 된다. 기득권만 탐해서는 안 된다. 아니 배격(排擊)해야 한다. 타파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振作)시켜야 한다. 먼저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진정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사심(邪心)과 탐심(貪心)을 버리고 혜안(慧眼)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특히 위정자들은 그리해야 한다. 오도(誤導)해서는 안 된다. 특권의식(特權意識)을 가져서도 안 된다. 민(民)을 우습게봐서는 안 된다. 민은 물[水]과 같은 존재(存在)다. 그들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이규임 /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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